[Sportlight in Book] 빅 픽처(THE BIG PICTURE) - 내가 꿈꾸는 삶, 그 길을 가로막는 부모.

[Sportlight in Book] 빅 픽처(THE BIG PICTURE) /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p.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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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러비카메라에서 일한 지 넉 달이 되었을 때 아버지가 미리 알리지도 않고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나와 아버지는 뜸하게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내가 입은 판매원 유니폼(윌러비카메라라는 이름이 수놓인 싸구려 청색 재킷)을 보자마자 경멸의 표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카메라 사러 오셨어요?"

"너한테 점심 사주러 왔다."
 
우리는 6번가와 32스트리트 모퉁이에 있는 작은 커피숍에 마주앉았다.

"오늘은 인디아클럽에 안 가세요? 제 유니폼 때문에 너무 창피하시죠?"

"그걸 아는 걸 보니 아직은 제법 똑똑하구나."

"그 말씀은, 제 유니폼이 정말로 창피하다는......."

"너는 이 아비가 싫지?"

"아버지가 딱히 저를 좋아하신 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헛소리는 그만두고......."

"헛소리가 아니라 사실이죠."

"넌 하나뿐인 내 아들이야. 내가 너를 어떻게 싫어할 수 있겠니?"

"그렇지만 저한테 많이 실망하셨잖아요."

"네가 네 일에 만족한다면 나도 만족한다."

나는 아버지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세요?"

아버지가 피식 웃었다.

"그래, 진심은 아니다. 사실, 나는 네가 여기서 시간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더없이 소중한 시간을. 그렇지만 넌 이제 스물세 살이야. 이제부터는 네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일일이 간섭하지 않을 생각이다. 네가 원하는 길이라면 굳이 반대하지 않으마. 나는 그저 다시 서로 연락하고 지내기만 바랄 뿐이다."

정적.

"그렇지만......아비로서 한 가지 충고를 해두마. 언젠가 반드시 어려운 때가 찾아 올 게다. 앞으로 오 년 후가 될 수도 있지. 돈 한 푼 없다는 사실이 비통하고, 널 지치게 할 게다. 그런 때를 대비해 네가 로스쿨 졸업장 같은 걸 따놓으면 걱정 없이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다. 변호사가 되어 여유가 생기면 관심이 있는 분야에 좀 더 집중할 수도 있겠지. 넌 사진을 좋아하니까 최고의 장비를 살 수도 있고, 전용 암실 같은 걸 꾸밀 수도 있고......."

"꿈도 꾸지 마세요."

"알았다. 알았어. 더 이상 말하지 않으마. 그렇지만 명심해라. 돈이 곧 자유야. 돈이 많을수록 선택의 폭은 넓어져. 네가 학교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면, 로스쿨을 졸업하거나 MBA 과정을 마치기로 한다면, 내가 학비를 대고, 네 생활비까지도 대주마.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적어도 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정말 대주실 수 있어요?"

"당연하지. 아비가 약속한 건 지킨다는 걸 너도 잘 알잖느냐?"

물론 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파우스트의 거래 같은 아버지의 제안을 나는 거절했다. ......적어도 한 달 동안은.

팔월 초였다. 나는 이런저런 신문사 네 곳에 이력서를 냈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메인 주 포틀랜드의 <<프레스헤럴드>>라는 지방 신문 사진부장조차 내게 퇴짜를 놓으며 수련을 더 쌓으라고 충고했다.

윌러비카메라에 매니저가 새로 왔는데, 그는 내 얼굴에 명문가 티가 나서 마음에 안 든다며 나를 카메라 판매대에서 필름 판매대로 내려 보냈다. 어느 일요일 오후, 키가 크고 마른 60대 남자가 들어오더니 트라이엑스 반 타스를 달라고 했다. 내가 필름을 주자, 남자는 아멕스 카드를 건넸다. 그때 신용카드에 있는 이름을 보았다.

'리처드 아베돈'.

"손님께서 그 유명한 리처드 아베돈이세요?"

내 목소리에서 스타를 본 충격이 심하게 드러났다.

아베돈은 조금 지겹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런가 봐요."

나는 신용카드를 찍으며 말했다.

"세상에......리처드 아베돈이라니? <텍사스 떠돌이들> 연작을 정말이지 좋아합니다. 놀라운 작품이죠. 콘트라스트를 살린 테크닉을 따라하려고 엄청나게 애썼습니다. 흑백 계조를 아주 뛰어나게 잡아내시잖아요. 그래서 요즘 저도 타임스스퀘어에서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노숙자들, 뚜쟁이들, 매춘부들, 하층계급들. 그렇다고 해서 다이앤 아버스가 한 것처럼 도시의 뒷골목을 보여주려는 건 아니고, 선생님이 작업하신 것처럼 풍경에서 인물을 분리시키는 '얼굴이 곧 풍경이다'라는 개념을 제 사진에 입히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아, 그런데 제가 정말 여쭙고 싶은 건......"

아베돈은 내가 정신없이 읊조리는 독백을 가로막았다.

"계산 다 됐소?"

나는 턱 왼쪽을 심하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하고 나서 카드 명세서를 내밀었다. 아베돈은 명세서에 서명을 하고 필름을 잡더니 옆 카운터에서 기다리고 있던 다리 긴 금발 여자에게로 가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여자가 아베돈에게 속삭이듯 묻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 사람, 무슨 말이 그렇게 길어요?"

아베돈이 대답했다.

"그냥 한심한 카메라 광이지, 뭐."

며칠 후 나느 LSAT 준비 과정에 들어갔다. 일월 초에 LSAT 시험을 보았고, 놀랍게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697점이었다. NYU와 버클리, 버지니아 같은 미국 최고 로스쿨에 들어가기에 충분한 점수였다. 나는 환호했다. 신문사 사진부장들에게 연속해서 퇴짜를 맞았던 나는 모처럼 승리를 거둔 기쁨에 도취했다. 사진에 매달리기 전까지만 해도 당연히 주어졌던 승리감이었다. 나는 결국 로스쿨이 나의 일이라고 마음을 다잡았다. 특히, 난생처음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린 것도 기분 좋았다. 아버지는 어찌나 기뻤던지, 내가 가을에 NYU 로스쿨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더니, 5천 달러짜리 수표와 함께 전에 없이 카드로 적어 보냈다.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공부에 몰두하기 전에 이 돈으로 좀 즐기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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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호사 자격시험을 통과하고 나서 일 년 뒤-나는 이미 월스트리트의 큰 법률회사에서 안정된 자리에 올라 있었따-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는 인디아클럽에서 성대한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곧 심장 발작을 일으켰다. 나중에 의사가 나에게 말하기를, 아버지는 인디아클럽의 옷 보관소에서 코트를 받다가 쓰러졌다고 했다. 바닥에 쓰러지기 전에 이미 숨을 끊어져 있었다.

'돈이 곧 자유야.' 그렇죠, 아버지, 하지만 그 자유를 얻으려면 일에 몰두해야 하죠.

이번 역은 125스트리트입니다. 다음 역은 그랜드센트럴입니다.

나는 안내원의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정신을 차렸다. 교외를 지나는 동안 깜빡 잠이 들었던 것이다. 잠시 정신이 멍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아니, 내가 어쩌다 이 통근 열차를 타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정장을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다니. 이럴 수는 없어. 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어. 나는 이 통근 열차를 타고 있을 사람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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